제7의 감각 (전략적 직관) vs. 하나님의 음성 듣기

제7의 감각윌리엄 더건, 비즈니스맵, 2008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사는 삶

소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갈망하는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음직한 주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에 '직통 계시'라는 표현을 섞어 비판적으로 말하는 크리스쳔이라도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던지, '이러이러한 성경구절이 생각났다'던지 하는 표현은 흔하게 사용하는데 표현만 다를뿐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 또는 계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와있다. 키워드로만 검색해도 무수하게 나올 정도다.

이와 관련된 대부분의 책들을 요약해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대로 사는 삶은 아래와 같이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1. 평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라.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것)
  2. 음성을 듣기 전에 나의 생각을 내려놓아라. (통상 어둠의 영이 나에게 말하는 것을 대적하는 것을 포함한다)
  3. 그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4. 말씀하신 것에 즉각 순종하라.

다음 얘기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아래의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1. 역사적 사례를 충분히 공부하라 (기억의 선반에 저장해두라)
  2. 냉철함을 유지하라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대와 이전의 생각들을 머릿 속에서 깨끗이 지워라)
  3. 섬광 같은 통찰력
  4. 결단력 (결심, 결의, 의지, 추진력을 말한다)

'위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대로 사는 삶'의 과정과 놀랄만큼 유사하지 않은가? 이것은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 '제 7의 감각, 전략적직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클라우제비츠가 주장하는 '혜안의 작동 방식'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본래 군사전략을 정리한 사람이며 군사전략과 관련된 다른 인물인 '조미니'의 군사전략과 대비하여 이 책의 논지를 전개한다.

저자는 이 주제로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여러가지를 말해야 하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클라우제비츠는 군사전략을 세울 때 위에서 언급한 '섬광 같은 통찰력'을  따라가라고 말하는 반면, 조미니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라고 말한다. [1]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다고 믿는 비전을 따라 노력하고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스트레스, 정죄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성경적인 권면은, '자신의 생각 심지어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는 그것마저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자신의 동기를 점검하며,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라, 스스로 목표를 만들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 일 것이다.

이 권면을 클라우제비츠의 주장과 표로 비교해보자.

성경적 권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순종하고 따라가라.

클라우제비츠

   자신의 목표는 내려놓고,

 섬광 같은 통찰력을 따라

 결단하라.

어떤가? 완전히 동일하다.

위의 성경적 권면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발견하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사람들을 동기부여했던 그 시절에서 최근에는 '자신의 비전보다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최신 유행의(?) 성경적 권면인데, 오히려 이를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과거의 권면이 조미니의 방식과 대비된다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방식은 클라우제비츠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다.[2]

하나님도 우리에게 목표나 비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운명과 같은 어떤 것을 던져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때 그때 당신과 교제하며 그 분 음성을 좆아가길 원하신다.

 

전략적 직관 vs. 하나님의 음성 듣기

다시 전 얘기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음성과 클라우제비츠의 방법론을 비교해볼 때 다른 점은 하나밖에 없다.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섬광 같은 통찰력'이다.

그렇다면 섬광 같은 통찰력은 무엇일까?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섬광 같은 통찰력이란, 다양한 경로들을 통해 기억의 선반에 분산된 형태로 저장된 정보들이 순간적으로 다시 결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 통찰력이 일어나는 때는 자신이 의도한 때도 아니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도 아닌 '갑자기, 한 순간에', 말그대로 '퍼뜩', 깨달아지는 정보다. 이 책에서는 섬광 같은 통찰력을 '전략적 직관'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전략적 직관이 발생하려면 먼저 과거의 기억들, 즉 역사로부터 배우는 선례, 정보들이 머리 속에 이미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 이 정보들이 어느 순간 하나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통찰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통찰력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정보는 어떤 입증된 것을 말하는 과학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아이디어와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듣기'는 어떠한가?

먼저 이 질문에 답해보라.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듣는 그 음성은 '진정한 하나님의 음성'인가, 혹은 '성경적 지식들이 섬광 같은 통찰력을 통해 결합되면서 얻어지는 정보'인가?

사실 답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나 '발견'이 아니라 '나와 구별되는 다른 존재와의 대화'라는 사실이다. 이 점을 놓치고 있다면 위의 질문은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즉,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할 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인가'가 아니라, '누가 주시는가'여야 한다. 섬광 같은 통찰력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는 있지만 그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나 원인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주지한다면, 그 통찰력을 일으키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 될 것이다.

위에서 전략적 직관은 자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통찰력은 다분히 영적 통찰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전략적 직관이 영적 깨달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적 깨달음은 전략적 직관의 형태와 비슷한 방식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90%이상이 내면으로 주어지는 음성이라는 것을 기억해보라). 이 점은 놀랍게도 이 책에서는 동양 철학과의 유사성으로 설명하면서, 영적 깨달음을 언급하고 있다(6장 전투의 달인 부처).

이 점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하는 크리스천들이 심지어 '영적 고수'로 알려진 분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과 전략적 직관을 구별하는데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전략적 직관으로 주어진 정보를 검증 없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고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또 소위 '헌신된 자'들일 수록 자신의 사역 경험과 성경 지식으로 인해 자신이 깨닫게 된 정보들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격상'시키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몇몇 성숙한 크리스천 리더들은 자신에게 주신 음성을 나눌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다는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라고 나누라고 권면하고, 예언이 주어졌을 때에도 받은 사람이 성경적인 분별을 통해 검증하고 맞지 않을 경우 버릴 권리가 있음을 가르친다.

 

권 면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전략적 직관과 하나님의 음성을 대비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이 둘을 같은 기준 혹은 레벨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전략적 직관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가 중요함을 말하고 싶다. 또 하나님의 음성이 대부분 '내면적으로 들리는 음성'의 형태로 들리기 때문에 이는 자신의 전략적 직관과의 분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때 하나님의 음성, 나의 생각, 사단으로부터 오는 생각 세가지를 분별하는 과정을 분석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두 가지 부류의 크리스천들에게 꼭 필요한 권면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권면이다. '전략적 직관'의 형태로 오는 나의 생각은 상당히 강렬한 자극을 주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세가지 출처들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으며, 평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일 경우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기가 너무나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는 그 음성을 너무나 확신있게 말하는 태도는 위험하며, 항상 겸손한 태도로 검증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도록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태도가 결여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심지어 조종하는 일들이 생기기까지 한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크리스천들이다. 몇 년전에 오프라윈프리에 의해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시크릿'은 어떠한 태도로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으로 이끄는가에 대한 조언이 담긴 책인데, 성경적 근거만 빠져있을 뿐 성경의 가르침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심지어 그 근거들을 다른 종교들에서 가져와 설명하기까지 한다. 이런 책들을 보면 '성경적으로 사는 삶'을 '하나의 좋은 방법론'으로 치부하게 되는 주장에 생각이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사실 이러한 주장이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론 등의 주장이며, 심지어 일부 기독교인들까지 분별하지 못하고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방법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길 원하신다.

 

에필로그

중고등학교를 나왔다면 치를 떨었을 법한, 누구나 들어보았을 이름 '케플러'는 행성운동에 대한 세가지 법칙, '케플러 법칙'을 만들어 천문학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이런 발견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가 감사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4]

당신의 창조 안에서 저에게 이런 기쁨을 주시고, 제가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작품을 누릴 수 있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는 저에게 소명으로 주신 일을 완수했습니다. 소명으로 주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저는 당신이 저의 마음에 더하신 모든 재능을 활용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이해로 당신의 무한한 풍성함을 이해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저는 제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당신이 만드신 작품의 웅대함을 밝히 보였습니다.

케플러의 태도와 같이 사실 과학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과 현상을 설명하고 그 분의 크심을 보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어야 했는데, 반대로 과학이 설명하는 방식이 하나님보다 우선되고 있다. 그 분이 만드신 것들을 가지고 그 분을 설명하려 드는, 우습기 짝이 없는 현상 말이다.

 

제7의 감각, 이 책은 잘 씌여진 책이지만,

과학이 어느 샌가 모르게 하나님을 설명하려 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따라가는 삶 또한 그 분과의 친밀감, 기쁨을 뒤로 밀어놓은 채 방법론으로 설명하려 드는 시도로 오인될까 걱정된다. 이 책을 보면서 나처럼 분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그러한 생각들은 알게 모르게 도둑처럼 다가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 분의 뜻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요 10:10)

 


  1. p.143
    "이제 조미니와 클라우제비츠로 돌아가보자. 조미니는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한다. 클라우제비츠는 과거에서 가져온 예들이 가치 있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합쳐지는 결정적인 지점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조미니는 흐름을 통제하라고 하고, 클라우제비츠는 흐름과 함께 가라고 한다. (중략) 목표에 도달하려면 목표를 포기하라."
  2. p.294 (전략적 직관 강의를 듣고 난 후 한 학생의 반응)
    "… 이 수업을 듣기 전에 나는 전통적인 조미니의 접근법 말고 다른 대안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중략)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항상 꿈을 높게 갖고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목표를 바꾸기로 결정하기라도 하면 얼마나 엄청난 실패라고 생각했는지…"
    크리스천들이 쓰는 단어로 바꾸면 하나의 간증문 같지 않은가?
  3. p.34
    전략적 직관을 이용하는 과학적 방법론은 상상력이 아니라 발견에 의존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상상하지 않는다. 발견하고, 그런 다음에 알게 된다.
  4. 마이클 호튼.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 p.178. 부흥과 개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