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인도자는 성공적 예배를 좌우하는가?

최근 한 찬양인도자의 고백에 관한 글을 읽고, 찬양인도에 관한 내 견해를 써보기로 했다.

필자는 고2때 처음으로 드럼으로 예배를 섬기기 시작했었고,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예수전도단 예배팀에서 드럼으로, 교회 중고등부, 청년부, 대예배 등에서 예수전도단 캠퍼스모임에서 찬양인도로 섬겼다. 예배인도만 10년 이상을 해오는 특권을 누렸다. (돌이켜보면, 진정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그간 느낀 것들이 적지 않다. 많은 목회자들, 예배팀들, 찬양인도자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분석해보기도 했고 무엇이 진정한 예배인가 또,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 많은 고민을 해왔고, 많이 변해오기도 했다. 지금의 생각도 나중에 바뀔수도 있겠지만, 부족하나마 정리해보려 한다.


찬양인도자와 예배팀의 (이후로는 찬양인도자만 언급하겠지만, 함께 언급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기름부음'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찬양인도자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찬양인도자의 기름부음에 따라 그 예배에 회중에 부어지는 기름부음이나, 예배의 성패여부가 달려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직접적이던지 간접적이던지), 이를 영적 전쟁에 연결해서 마치 찬양인도자가 영적 전쟁의 선봉에 서서 회중을 이끌고 가야할 사명을 가진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배에 일정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도 있다. 이런 얘기를 차근차근 풀어보려 한다.

 

[예배자의 착각]

찬양인도자의 목적이자, 가장 큰 '유혹'이며 '성취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는, '회중이 예배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음악적인 것이든, 예배 전의 강력한(?) 기도이든, 심지어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예배에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이든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일단 찬양인도의 자리에 서면 그 목적을 의식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예배를 마친 후의 사람들의 반응이 의식되기 마련이고, 앞서 언급한 자신의 방법론 대로 예배에 임했는지 자기 자신을 평가하면서 교만했음을 회개하기도 하고 반대로 겸손하게 잘 예배한 자신을 보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방법론을 취했던지 피하기 힘든 생각은, '자신의 노력이 회중을 예배하게 만들 수 있다' 라는 은연중에 드는 착각, 그것이다. 


[회중예배의 이상한 현상]

이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해 쓴 글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찬양인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음자세부터가 달라진다. 웃지못할 재미있는 사실은, 찬양 후의 말씀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회중의 예배 참여도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각설하고, 사실 흔히 말하는 기름부음의 그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음악적 진행은 어느정도 정해져 있다 (반복 어구 사용, 몽환적 코드 진행, 강렬한 비트 등). 찬양인도에 관한 글들에서도 이런 요소를 가이드하기도 할 정도이다. 유명한 혹은 기름부음이 있다고 여겨지는 찬양인도자들에게서는 음악적 성향이나 스타일은 다를 수 있으나, 이러한 공통된 요소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의 유무에 따라 회중의 예배 참여도가 달라지는 것은, 찬양인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보았을 법한 재미있는(?) 현상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1.

'영적 느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찬양인도자의 영적으로 준비된 자세를 상당히 중요시한다. 평소의 삶은 당연하고, 예배 전 준비 관점에서는 더욱 민감해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자세를 중요시함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성향이나 완성도에 따라 기름부음에 대한 판단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고, 거꾸로 그러한 판단으로 그 찬양인도자의 '영적 준비' 상황을 유추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찬양인도자의 영적 준비(?) 여하에 큰 상관없이, 앞서 언급한 [회중 예배의 이상한 현상]에서 언급한 음악적 요소가 부족하거나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지면, 기름부음이 없다고 느낄 확률이 (통계적으로)높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적 감성과 영성의 혼동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예를 생각해보면, 예배가 아닌 일반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에서도 흔히 말하는 기름부음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기름부음과 분리하고 싶은 생각에, 예배가 아닌 때 느껴지는 감각을 스스로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느낌, 즉 음악적 요소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은 '영성'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을 때 감성을 느낄 수 있으나 필수요소는 아니 듯이,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간단한 사실을 인지하거나,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감성과 영적 느낌, 이 둘을 분명하게 분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필자의 좁은 경험으로는 신뢰할만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는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

혹자는 감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예배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예배가 콘서트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 대해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예배가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라면, '의' 뿐 아니라 '지정의'를 모두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의지적으로 나의 마음을 준비시켜 감성으로까지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감성이 의지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찬양인도자가 기여할 바를 찾을 수 있다. 필자가 1절에서 언급한 음악적 패턴이나, 혹은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연습 등 모두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그러한 '방법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방법론이 감성에 의해 회중들의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는 회중이 예배에 방해받지 않도록 공교하게 연주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다만, 그 수준의 높음이 아니라 회중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나이대가 높은 회중 예배에서와 학생이나 청년 층의 선곡이 달라져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한 면에서 회중예배에서는 음악적 수준보다도 틀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진행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찬양인도자와 예배팀은 이러한 진행을 위해 잘 준비되어야 하고, 모든 회중의 성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나 최대한 배려해서 준비하는 것이 권장된다.

또 회중들은 자신의 음악적 성향이나 찬양의 외형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에 예배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상당히 어려운 엇박에서도 자유롭게 예배한다. 그들의 문화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클래식을 들이대면 지루해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면에선 지금의 찬송가가 절제되고 찬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찬송가가 만들어질 당시 음악 수준으로 볼 때는 최신의 음악 기법이 사용된 곡들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치는 것이 이단 취급당한 시절도 있었다. 

'음악'은 우리의 감성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물이다. 

 

[그래서 어떻게?]

글을 마무리하면서 언급하고 싶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찬양인도자의 착각과 관련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의 1절과 연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은사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사고방식은, 찬양인도자가 예배의 흐름을 보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신의 노력이나 기도에 의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상당한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제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그 분의 인도하심이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드러내신다 (혹은 일하신다) 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찬양인도자가 영적으로 '막혀' 있거나, 순종하지 않으면 그 예배는 실패한 예배, 기름부음이 없는,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예배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말 그러한가? 필자의 의견은, 상당히 근시안적인 생각일 뿐더러 성경적이지 않은, 인간의 경험에만 근거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적이라 함은, 예배의 흐름에 대한 판단 또한 1절에 언급한 부분과 상당히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에 대한 성경적 판단 또는 믿음보다도 개인의 느낌이 더 중요해지며, 그것을 근거로 '예배의 흐름'을 드라이브해야 하며, 그 성공을 위해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이상한 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목적인데, 목적이 수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중보'라는 이름으로 예배나 찬양인도자를 측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찬양인도자나 예배팀을 포함해 모든 회중이 예배 때 가져야 할 시각은,

'찬양인도자도, 예배팀원도, 죄많은, 그러나 예수의 피로 사하심을 받고 깨끗함을 입은, 회중의 일원과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예배자' 라는 시각이다.

예배(회중예배)는 성공과 실패를 가늠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저 삶에서의 예배의 연장일 뿐이고, 단지 회중이 모여 함께 교제하며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예배할 뿐, 하나님은 그 분의 일을 하신다.

 

찬양인도자들에게:

– 자신의 어떠함이 예배를 성공시키거나 망칠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그저 한 예배자로 서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회중을 돕기 위해 잘 준비하되, 그것을 또한 예배의 성공요인이나 자신의 의로 삼지 않길 바란다.

 

회중들에게: 

 – 찬양인도자를 기대하는가? 혹은 그 반대인가? 그들의 어떠함이나, 당신의 느낌과 상관없이 당신이 먼저 예배하길 바란다. 또 자신을 제한하거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제한하지 말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테두리 안에서만이라도,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