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그러진 결혼관

나의 그리 높지도 않은 위신(?)에 스크래치를 줄 수 있음에도 이런 글을 남기는 것은, 나의 일그러진 결혼관의 변화에 대한 일말의 소망으로, 후에 이 글을 보면서 더욱 감사하게 될 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SNS 상에 올려도 될 만한 글을 굳이 홈페이지에 올려야만 했을까. 그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혹시라도 개선될 나의 생각과 다시 비교해보고 싶은 갈망일까.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도상에서 문득 든, 그러나 순간의 생각 아닌 그 동안의 생각이 정리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여자는 사랑받고 사랑할 대상이 있는, '안정적인 가정'의 느낌이 필요한 것이지 '남자'가 필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결혼식을 전후로 한 연애와 알콩달콩한 신혼 기간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런 기간들이 지나고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면 그렇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나는 남자이니 알 길이 없고.. 그저 추측이다). 연애 중인 남자와의 결합을 소원한다기보다는 결혼 자체를 위해 (자녀를 생각하는 건강의 문제이건 심리적 안정의 문제이건 간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보통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확률이 큰 것을 보면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주장 아닌가 싶다.

자녀를 얻게 되면 여자는 자연스레 사랑의 대상이 남편보다는 자녀에게로 옮겨가게 되면서 '남자'는 소외당하게 되고 심지어 양육의 대상이기까지 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경우가 흔한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흔한'의 기준은 나의 주변에 국한된 것이고, 또 내 주변에서도 나의 선입견에 의해 걸러진 정보일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이것이 물론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 아니고, 또 성경에서 말하는 왜곡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그 본래의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하기도 어려운 일이겠으나(물론 나를 포함한 남자들도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못할 경우가 태반일 것이고, 부족한 가운데 감사를 발견해가야 하는 것이 옳은 태도일 것이나), 현실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결국, 여자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애쓴 남자들의 노력의 종국에는 버려짐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결혼은 남자 입장에서는 비참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제도라는 결론 아닌 결론을 얻게 된다. 자녀가 출가하고 나서 다시 부부가 돈독해지는 경우들도 있다고 하나, 자녀를 양육하는 적게는 20년, 길게는 30년 이상을 멀리 살아온 부부가 다시 그러한 재결합('재'결합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일그러진 생각의 근거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별로 토론하고 싶지 않다)을 이루려면 자녀의 출가 이전에도 피말리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여자 입장에서도 이런 류의 결말을 얻을 만한 논리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바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기쁨이라고 하기엔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재정 문제, 관계 문제 등)을 상쇄할만한 기쁨이라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현재까지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들어본 바 없다), 대체 존재는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택하고, 나 또한 수십 년 후의 외로움(미래) 때문에 현실(이성을 만나고 싶어하는 현재)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은 심리는 시간의 제약 안에 살아가는 제한된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하나님이 심어놓은 본능인걸까. 그것이 자손 증식의 본능이든, 성욕이 되었든 그 무엇이든 그 제약이 하나님으로부터라면 뭔가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현재로서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또 시간이 지나면 누릴 수 없는) 그 또한 슬픈 일이니, 이런 복잡한 생각 따위 제쳐두고 일단 결혼을 저질러 놓고 생각해야 하는 일인걸까. 아직까지는 그 비밀을 잘 모르겠다 (결혼해봐야 깨달을 수 있다는 주장하는 것도 수없이 들었으나, 쉬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내 입장에선 (나 자신에게 슬프게도), 그들이 누리고 있는 일부 유익으로 자신의 결혼을 정당화/합리화하고 싶은 심리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걸 누려보겠다고 시험삼아 결혼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부활하면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마 22:30), 이 땅에서는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제한된 인간이기에 이성을 만나도록 하신 것일까.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전 7:38). 사도 바울 입장에선 이 땅에서의 소망보다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며 살아간 것이 그의 인생의 전부였으니까. 

 

나도 내 생각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왜곡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규분포 상에 평균 위치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는 것 같긴 하다) 것 쯤은 잘 인식하고 있고, 역설적이게도 나의 본능은 생각과 다르기에, 슬프도록 답답한 감성에 젖어버린 저녁이다. 고난주간에 난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중에 나는 철학가나 궤변가를 직업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Author: Seonh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