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와 블록체인

내 몸의 정보는 내 것이 아니다

작년 말, 그러니까 2017년 11월에는 메디블록(Medibloc)이라고 하는 블록체인 기반 의료정보 공유 플랫폼이 ICO(Initial Coin Offering)를 했습니다. ICO 한 달 전인 2017년 10월에는 White Paper 1.0 버전을 공개했습니다.

이 플랫폼의 개념은 간단하게 생각하면 ‘블록체인이 보안에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여기에 의료정보를 관리하면 되겠네’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저장소를 의료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블록체인으로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의료정보 생성 및 활용, 관리의 주체가 개별 의료기관이었다면, 그 소유권과 활용의 주도권을 환자에게 넘기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병원으로 대표되는 의료기관에서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내 돈 주고 내 몸에 대한 의료 데이터를 생성하고는(물론 그 비용은 치료비용이긴 하지만), 그 데이터를 내가 조회 받으려면 또 돈을 내야 합니다. 게다가 다른 의료기관에서는 그 데이터를 알 수 없으니 또다시 검사 등의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주도권이 환자에게 넘어온다면 어떨까요? A 병원에서 발생한 내 의료 데이터를 내가 관리하고 그 데이터를 B 병원에서 조회할 수 있도록 허가함으로써 중복 의료비용을 절감하고 의사 입장에서도 더 정확한 의료 행위를 할수 있게 됩니다. 병원 뿐 아니라 의료보험 신청 시에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의료정보 연구진에게는 일정 비용을 받고 내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PHR (개인 건강기록) 플랫폼

사실 이것이 그리 새로운 개념은 아닙니다. 개인 건강기록(PHR, Personal Health Record)이라고 하는 플랫폼에 대해서는 10년도 넘게 꾸준한 연구와 시도가 이루어져 왔었습니다. 2012년에 종료된 구글의 Google Health, 아직까지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HealthValut도 그러한 시도의 일환입니다. 이들 플랫폼은 의료기관이나 의료장비들로부터 발생한 개인 의료 데이터를 환자가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IT 공룡들이 의료 데이터마저 독식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들여다보인 탓인지 시장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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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의료정보학회에서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또는 전자건강기록(EHR, Electronic Health Record)과 함께 PHR도 함께 연구되어 왔지만 엄격한 국내 의료법의 제한으로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1월에는 애플도 iOS를 통해 획득되는 의료데이터를 PHR로 확장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사실 이미 예견된 바이긴 하지요. 그러나 국내 도입에 있어서 현재로서는 의료법의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의료데이터를 개인 아이폰에 저장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이를 의료기관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전달하기 위한 시스템 연계가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 의료정보를 블록체인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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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사진은 본 글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설명한 PHR의 실패는 어쩌면 신뢰할만한 탈중앙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서비스를 이용한다 해도 그건 ‘구글/마이크로소프트 중심 의료정보 플랫폼’이지 ‘환자 중심’ 의료정보 플랫폼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고, 그만큼 환자에게 돌아오는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마어마한 의료 데이터를 관리하는 플랫폼 제공은 그 정도 기업을 되어야 가능한 일이니 경쟁업체가 만들어지기 어렵고, 데이터 독점 등에 대한 반감도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개인 의료 데이터를 블록체인에 올리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플랫폼을 활용하는 이해 당사자들(환자, 의료기관, 연구기관 등)이 블록체인에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에 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내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알고 직접 통제할 수 있으며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진료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를 위해 불필요한 진료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데이터 제공에 매우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의료기관들을 거치지 않고 이 플랫폼을 통해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를 획득할 수 있다면? 이러한 생태계가 제대로 구축될 수 있다면 환자 뿐 아니라 의료기관이나 연구기관 등에서도 PHR 활용 동기부여 측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겠지요.

바로 메디블록이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시도가 메디블록이 처음인 것도, 유일한 시도인 것도 아닙니다. 메디컬체인이라는 플랫폼이 메디블록보다 조금 앞선 2017년 8월 ICO를 한 바 있습니다 (관련뉴스). 또한 헬스케어 분야에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는 IBM도 블록체인 기반 의료정보 공유 플랫폼 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알파고로 유명세를 탄 딥마인드의 하위 프로젝트인 딥마인드헬스(DeepMind Health)에서 일찌기 블록체인 도입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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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메디블록 뿐 아니라 라이프시맨틱스블록체인 기반 의료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이미 관련한 국내/국제 특허도 출원한 상태입니다. 또 여기에 발맞추어 보건복지부도 의료분야에서의 블록체인 활용을 위한 R&D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언급했습니다 (이제서야??). 메디블록이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블록체인 기반의 의료 공유 플랫폼이 우리 생활에 점점 가까이 오고 있다는 흐름은 부정할 수 없어 보입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메디블록 개발 계획에 따르면 올해 5월에는 플랫폼 API와 SDK 제공, 12월에는 플랫폼 정식 버전 공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올해 중순에 개발 윤곽이 어느정도 드러나고, 실제적인 테스트는 올해 말이나 내년은 되어야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메디블록 White Paper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메디블록 플랫폼에서 다루는 정보는 크게 세가지로, MED 정보, 개인 신상정보, 그리고 의료정보로 나눌 수 있다. 모든 정보를 블록체인에 저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용, 저장 용량, 성능 등의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블록체인에 직접 저장하는 정보를 최소화하고자 상대적으로 용량이 큰 개인 신상정보, 의료정보 등은 블록체인 외부에 암호화한 형태로 저장하고 그에 대한 해시값만 블록체인에 기록한다. 데이터 저장소로는 IPFS를 기초로 하여 구성한 탈중앙화 저장소를 사용한다.

IPFS가 요즘 자주 등장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성능이나 안정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의료정보와 같은 민감한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위험부담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스템적인 개발 문제도 있지만 의료기관들과의 협업, 일반인 대상 마케팅 등이 동시에 시너지 효과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는 말그대로 ‘플랫폼 사업’이라는 점도 상당한 도전 과제입니다. 게다가 HL7, DICOM 등의 의료정보 표준 데이터모델은 12월의 정식 버전에 반영하고, 내년 1월에는 다른 표준들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의료정보학을 전공했던 필자의 사견으로는 그리 만만한 계획이 아닙니다.

또 한가지, PHR 도입과 활용 측면에서 앞서 언급한 의료데이터 공유 문제에 대한 법적인 리스크도 있습니다. 메디블록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Q. 의료법상 환자정보공유에 대해 법적제한이 있는것으로 압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실건가요?
A.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상 제3자(병원이든 회사든 정부든)가 환자 데이터를 환자가 아닌 다른 제3자와 공유하는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의료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제 3자에게 본인의 의사에 따라 전달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현재 환자가 의료 기관으로부터 의무기록 사본을 받은 다음 제 3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디블록은 환자가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모바일이든, PC든 전자 장비에 저장을 하게 하고 그걸 블록체인을 통해 무결성 증명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법적인 제한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메디블록은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라고 자신있게 답변했지만 사실 이것은 블록체인 상에서의 의료데이터 관리와 전달(공유)의 주체를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 의료기관의 여러가지 이해관계(의료법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회적 통념 등 다양한 관점의 협의가 있어야만 하는 부분입니다. 필자도 저 부분이 원만한 협의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의료법상의 해석이나 판례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고 100% 장담하기는 어려운 부분 아닐까 싶습니다. 만일 의료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 발견된다면 그 또한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고요 (보건부에서 ‘이제야’, ‘올해 안에’, R&D를 ‘시작’하겠다고 했으니..)

아무튼 제가 보기에도, 또 주변의 의견들을 들어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상황인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응원하고 싶은 프로젝트이고, 더구나 국내기업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관심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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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Seonh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