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미러로 철학하기

전체적으로는 철학적 담론을 끌어내기 위해 드라마의 스토리를 억지로 붙인 느낌이 있어서 썩 맘에 드는 책은 아니었으나, 생각해 볼만한 주제가 있다. 최근에 재밌게 읽었던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알게 된 테크기업을 시작했던 사람들의 철학(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 특히 구글)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1. 디지털 클론이 대상인의 기억과 사고방식을 동일하게 공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 사람의 의식이라 부를 수 있는가? 혹은 고도의 알고리즘에 불과한가?

먼저 ‘동일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양자역학의 주장에 따르면 동일한 속성을 갖는다고 해서 그것이 동일한 대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므로 디지털 클론은 그 자체로 대상인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양자역학적인 관점이 아닌 심리·철학적 관점에서, 야스퍼스는 자아동일성(ego identity: 때와 장소에 따르지 않고 자신을 자신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연속된 상태)은 능동성(자신이 한다), 단일성(자신은 혼자다), 동일성(자신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다), 타인에 대한 자아의 의식(자타의 구별)이라는 4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위키백과). 디지털 클론이 수행된 이후 클론체와 대상인은 어떤 면에서든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사건을 만나며 서로 다른(완전히 동일할 수 없는) 인식을 키워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인식을 스스로 증강시켜갈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면 일단 ‘의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클론체가 된 이후부터 이미 다른 의식이 되어가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의식이라는 것의 본질상 생명과 뗄 수 없는 속성을 갖는 것이라 전제한다면, 디지털 클론이 가상세계에 업로드해서 존재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다른 신체에 옮겨심는다(다운로드) 해도 그것은 이미 본래 대상인과 동떨어진 디지털화된 알고리즘이거나 다른 신체에 체화된 다른 의식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클론체가 주변 사람들과의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그것이 본인이라 생각하여 말하고 행동할테니 주변인들이 혼란스러울 가능성은 다분하나, 나타나는 혹은 발현되는 특징만으로 그 존재를 원래의 본질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신체는 인간의 의식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가? 아니면 의식과 뗄 수 없는 유닛(unit) 혹은 유기적 복합체인가?

의식은 그 신체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의식의 기능이라 본다면 신체의 호르몬 변화에 의한 감정의 변화(의식의 반응)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반대로 욕구/질투/즐거움 등 감정에 의한 신체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만일 감정을 단순히 신체의 변화에 따른 물리적 반응으로만 설명하려 시도한다면, 인간의 의식이란 대체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따라서 이 둘은 개념상 구별하여 설명은 가능하나 완전하게 양분 가능한 독립적 실체가 아닌 하나의 유기적 복합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의식은 그 사람의 신체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며, 신체 또한 그 의식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성장하고 다른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자명하다. 이것이 기계와 사람의 본질적인 차이가 아닐까. 만일 신체를 의식을 담는 그릇 혹은 매우 정교한 유기물로 합성되어 작동하는 기계로 인식한다면 ‘생명’이라는 가치를 평가 절하하게 되기 쉽다.


3. 디지털 클론과 실제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어떤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는가?

디지털 클론의 존재 가능성이나 동일성의 논쟁 문제와 다르게, 이들이 뒤섞여 사는 세계가 큰 혼란을 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주제는 블랙미러에서도 등장했던 것처럼 다른 존재를 (‘디지털’ 클론이므로 영속이 가능한 형태로써) 받아들이는 다른 사람들의 인식 문제,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애착의 문제, 이들을 다루는 윤리적 문제 등인데 기본적으로 본래의 사람과 다른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심정적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혼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나 일상생활만 살펴보더라도 이런 유형의 심리적 혼란은 꼭 디지털 클론이 아니더라도 애완동물이나 인형 등에 이입하는 감정의 수준은 다를지언정 본질적으로는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혼란이 해결하지 못할 수준의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디지털 클론을 활용한 범죄 악용의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준비할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Author: Seonh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