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반대’에 반대하며 (2/6)

‘행위’에 초점을 맞춘, 그 부실한 근거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는 당연하게도 성경에서 출발한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 (레 18:22-23)”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구절은 남성 간 성관계의 문제와 수간을 금지하는 구절이며, LGBTQ+로의 확장, 즉 성 정체성과 지향성에 대한 전반을 포괄하고 있는 구절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기독교의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주로 남성 동성애자를 향하고 있다. 주로 이런 식이다.

“동성애자는 항문 성교 후유증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에이즈 환자의 80% 이상이 동성애자입니다. 그리고 그 치료비는 모두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해부학적 특성상 이성 커플에 비해 항문성교 행위의 가능성과 그로 인한 위험에 상대적으로 더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의학적으로도 알려진바와 같이 항문성교의 경우 에이즈의 전파력이 더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치 모든 동성애자들이 항문성교를 하고 있으며 그 후유증 또는 에이즈와 같은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듯한 저주에 가까운 표현, 그리고 그 치료비를 왜 우리가 지출해야 하는가와 같은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표현은 남성 동성애 혹은 그 옹호자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불쾌하면서도 논리적으로도 설득되기 힘들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1. 정확한 통계를 찾기는 어려우나 실제 후유증과 에이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남성 동성애자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성애자들에 비해 가능성이 높을 뿐이지 모든 남성 동성애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닐 뿐더러, 이런 문제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조심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2. 성적 자극에 눈을 뜬 사람들은 위와 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청소년기에는 동성을 보며 마음이 설렌다던가 가슴이 뛰는 등의 심리적/감정적 호감으로 그치는 경우가 흔함에도, 주로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일부’ 동성애자들의 문제를 자신들에게 대입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3. 저런 식의 표현은 남성 동성애자들의 성적 행위에 대한 비난이 마치 이성애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성애자들의 난잡하고 비위생적인 성행위(다자간 성행위, 스와핑 등)로 인한 문제 발생이 수적으로나 비율적으로 동성애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에 비해 더 우세함에도, 그것을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지 않은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언급한 성경구절은 ‘남성간 성행위’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여성 간의 감정이나 성행위는 물론 성 정체성과 지향성의 나머지 조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으므로, 동성애를 반대할 근거로 삼기에는 너무나 빈약하다 (단적으로, 여성 동성애자들은 항문성교 비율은 매우 낮으며 에이즈 발병률은 더더욱 희박하다).

성경적으로 볼 때 동성애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것이 마땅하나(동성애자에 대한 인격적 수용과 권리 문제는 별개), 일부 극단적 사례를 앞세우는 교회의 반대논리는 자극적이면서도 합리적이지 않다. 정치적인 목적으로서는 교회 내에서만 통용되는 논리가 적용되기 힘들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선택한 방식일 수 있으나, 오히려 역효과가(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반대’에 반대하며

1) 민감한 주제의 글을 시작하며
2) ‘행위’에 초점을 맞춘, 그 부실한 근거
3) 우리는 ‘은혜입은 죄인’이다
4) ‘죄성’에 대하여
5) 성에 대한 성경적 관점, 그리고 교육의 문제
6) 동성애 문제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

Author: Seonh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