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반대’에 반대하며 (4/6)

‘죄성’에 대하여

그러면 동성애 또는 나아가 LGBTQ+의 사고방식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죄성’에 맞닿아 있다고 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옳음’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주제를 살짝 돌려서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권은 매우 중요하다. 왜일까?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에 인권이 중요한가? 아니면 인권을 중시하기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일까? 그 합의는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 걸까? 인권의 이해나 근거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있으나 보편적인 합의에 도달하기란 매우 어려운 주제다.

반면 기독교에서는 하나의 결정적 근거를 제시한다(기독교인들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긴 하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고 복 주시기로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일하고도 완전한 이유가 된다. 비록 역사적으로는 기독교인들이 비참한 인권 말살의 현장들에 참여한 경우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것이 기독교가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의 죄성을 더 극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인권의 근거로 본다면,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사회적, 신앙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이 기준이 없다면, 인권 개선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합의가 인권인가? 아니면 인류 보편적으로 시대를 넘어 지향할 수 있는 방향성이 있는 것인가? 만일 미래에 동성애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다르게 형성된다면, 문화적 관행 혹은 상대주의에 기반하여 새롭게 협의해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그대로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면 그 원리는 누가 결정하고 협의한 것인가? 소아성애와 근친상간도 성적지향으로 인정받으려는 시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눈치챈 이들도 있겠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나의 성 정체성과 지향성을 그대로 인정받는 것을 넘어서 종국에는 옳고 그름을 ‘내가’ 혹은 ‘사람에 의해’ 협의하고 결정하려는 시도이며, 그럼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성경구절을 떠올리게 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17:6)”

동성애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기독교인과 비독교인들간에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두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틀림’이란 존재하기 매우 어려운 반면,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주되심을 부정하고 내가 주인된 본성에서 기인한 모든 행위가 죄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성애가 죄인가’라고 묻기보다는 ‘동성애가 죄성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한다면 신앙적, 성경적 관점으로 볼 때 동성애를 선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몇몇 LGBTQ+ 신학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성경이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주장을 하고는 있으나, 여기에 언급조차 할 필요없을 정도로 신학적으로는 물론 논리적으로도 매우 빈약한 수준인 것만 보아도 죄성에서 기인한 표면적 행태를 합리화하려는 발버둥 정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또 일각에서는 동성애 문제가 선천적이므로 죄일 수 없다거나, 환경에 의한 후천적인 문제이므로 죄 또는 치료의 대상이라는 둥의 주장 및 연구결과로 대립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독교 입장에서 이 논의가 정말 핵심인가? 죄성의 문제는 선천적이기도 하고 후천적이기도 하다. 성경적으로 보면 아담의 후손으로서 우리 모두는 ‘선천적으로’ 죄 아래에서 났으며(롬 3:9), 이로 인해 ‘후천적으로’ 나의 선택에 의해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선천적이라 해서 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후천적이라 해서 전환치료를 강요한들 그 성공률이 그리 높지도 않다(일부 동성애에서 돌아온 사례만을 가지고 동성애가 후천적이라는 증거로 삼는 경우가 있지만, 그만큼 매우 희귀한 경우로 보인다). 이런 류의 주장에 대해서는 되려 다른 질문을 하고 싶다. 온 세계에 만연한 음란의 문제는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동성애 그 행위 자체를 죄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표면적인 접근이며, 문제의 본질도 아니다. 예수님은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하셨다(막 9:47). 이것은 행위 하나하나가 아닌 문제의 본질 관점에서의 엄격함을 요구하시는 것이며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당연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행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나, 이런 우리의 모습은 성경적으로 볼 때 자책하거나 남들을 정죄거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죄성과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비참함을 깨닫고, 역으로 그에 비례하는 은혜의 크기에 감사하는 결론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감사함 속에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할 의무이자 권리를 가졌기에 점진적으로 죄된 행위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동성애 행위 자체가 문제인가? 우리의 죄성이 문제인가? 동성애는 우리의 죄성으로 인한 행태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왜 교회는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비리에 대해서는 조용하면서(특히 교회 내에서의 문제들은 더더욱) 유독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만 그리 민감한지 모르겠다. 그럴거라면 성폭행 반대 또는 처벌 시위라도 좀 하던가.

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죄성을 인정하고(회개) 하나님의 은혜(구원)를 구하는 것 외에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 외에는 그 방도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다.


‘차별금지법 반대’에 반대하며

1) 민감한 주제의 글을 시작하며
2) ‘행위’에 초점을 맞춘, 그 부실한 근거
3) 우리는 ‘은혜입은 죄인’이다
4) ‘죄성’에 대하여
5) 성에 대한 성경적 관점, 그리고 교육의 문제
6) 동성애 문제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

Author: Seonh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