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반대’에 반대하며 (5/6)

성에 대한 성경적 관점, 그리고 교육의 문제

그럼에도 남아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이미 성 정체성과 지향성의 혼란을 겪고 있거나 이미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에 대한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스스로 진단해야 할 문제, 즉 ‘내가 이 문제의 당사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과 이들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먼저 성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스스로를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 혹은 심지어 무성(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경우)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조차도 ‘성(性)’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인간에게는 왜 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성은 왜 하필 따로 존재할까? 오직 번식이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한 몸에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 실제로 이런 류의 질문은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으로도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결론을 내리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한가지로 대답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설계(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들이 볼 때 이 대답은 매우 무책임하고도 비과학적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해석하기 힘든 문제를 초자연적 영역으로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자연을 연구하면 할 수록 세상이 우연히 생성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개입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의 과학적 접근은, 종교와 과학은 배척관계에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이끌어낸다. 천문학의 기초를 닦은 것으로 잘 알려진 케플러는 당대 종교적 세계관으로 주장된 천동설을 무책임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려는 자세로(널리 알려진 그의 언행에서 명백하게 밝히고 있듯이)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함으로써 근대 과학의 토대를 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요컨대, ‘성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는 전제가 단순히 맹신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현실을 인정하는 겸손이며, 그렇기에 세상(여기서는 성의 문제)을 바라보는 틀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성 정체성’을 논의하는 맥락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성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닌 누군가의(하나님) 설계 하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생겨난 것이고 내가 마음대로 선택 가능한 자아의 문제라면 성 정체성을 찾을 이유조차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이는 내가 나를 어떻게 인식하던지간에 남성 또는 여성으로 태어나도록 설계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나의 성 정체성을 생물학적 성과 다르게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 역할에 대한 선호(예: ‘나는 남자로 인정받고 싶어’) 또는 거부감(예: ‘내가 왜 남자로 여겨져야 하지?’)을 현실에 반영하려는 시도일 뿐, 그 인식이 실체적이이지는 않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성 정체성이 개인의 선호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주장은, 성경적으로 볼 때는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으며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러면 성 지향성은 어떨까? 이 또한 성경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룰 것’을 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음을 밝히고 있고, 이성에게 끌리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반하지 않은 성 지향성과 관련한 주장은 개인의 성 정체성과 무관하게 어떤 성에게 끌리는가의 문제는 개인적 선호일 뿐이라는 것이며, 이는 성 정체성에 관해 설명한 앞선 논리와 동일한 맥락에서 성경적으로는 타당하지 않다.

자신의 성 정체성과 지향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라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특히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청소년기에 동성과의 가까운 감정을 사랑(‘사랑’이 무엇인가의 논의는 이 자체로 방대한 주제이니 여기서 다루기 어렵지만, 청소년기의 감정이란 일반적으로 꽤나 열정적이니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으로 인식하여 본인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던가 하는 등의 문제이다. 어떤 교육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 정체성을 성인이 된 이후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던가, 일부는 상황에 따라서 성 정체성을 바꿔도 된다고 교육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이 오히려 성 정체성 또는 지향성의 혼란을 겪지 않던 청소년들마저 고민하도록 만들고 있다(이런 교육의 목적 자체가 자신의 성을 주어진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당연한 듯 보인다).

특히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문제들이 꽤나 우려스럽다. 모든 청소년들을 만나본 것도 아니고 설문을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현실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갈리는 것 같다. 이 사안을 깊이 사색해 보지 않은 그들로서는, 동성애자들을 무조건적으로 혐오하게 되거나 교회를 거부하게 되는 두 극단으로 빠지는 경우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차별금지법 반대’에 반대하며

1) 민감한 주제의 글을 시작하며
2) ‘행위’에 초점을 맞춘, 그 부실한 근거
3) 우리는 ‘은혜입은 죄인’이다
4) ‘죄성’에 대하여
5) 성에 대한 성경적 관점, 그리고 교육의 문제
6) 동성애 문제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

Author: Seonho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