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s: Seonho Kim

About Seonho Kim

– Knowledge Engineer at eBay Korea
– Medical Informatics PhD Candidate, Kyunghee Univ, Korea
– Interest keywords: semantic web, ontology, linked open data, artificial intelligence
– Citations: http://scholar.google.co.kr/citations?user=5WWavXoAAAAJ&hl=en
– Hobby: playing instruments (drums, guitar)

데이터 분석 전문가라는 오해

오해

현 직장인 이베이코리아에서 AI팀 팀장을 맡게 되면서 가끔 주변으로부터 나의 전문성에 대한 섣부른 추측 또는 기대/시선을 받는 경우들이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일반인들도, 심지어 인공지능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AI 기술을 딥러닝과 거의 등가 수준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딥러닝 기술이 하루 아침에 생겨난 기술이 아니라 그 기반에 기존의 머신러닝 기법 / 선형대수 / 통계 등이 뒷받침하고 있다보니, AI 팀장이라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 이미지가 오버랩되어 엄청난 데이터분석, 머신러닝, 딥러닝 전문가로 귀결되는 모양이다. R이나 파이썬에 능숙한 것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덤.

그러나 실상 그렇지 않음은, 내가 참여했던 데이터분석이나 딥러닝 등 스터디 등에서 주구장창 퍼붓는 질문세례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 것보다도 반복적인 질문과 발언/토론을 통해서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무지를 드러내는 편이다보니 더 그러한 것 같다.

현실

내 연구/실무 경험의 중심에는 구글의 지식그래프, 위키피디아를 구조화한 디비피디아 등으로 대표되는 시맨틱 기술(Semantic Technology)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식표현(Knowledge Representation)과 이를 기반으로 한 추론기술 영역이다. 인공지능 기술에서 여전히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최근 인공지능 연구나 상용화 사례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그 중요성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보니 채용이나 이직 시장에서 소위 ‘잘 나가는’ 전문성은 아니란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게다가 이런 현실 탓에 이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스스로 갈고 닦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이마저도 무뎌지고 있어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정체성을 내세우기 무색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적 호기심도, 욕심도 많다보니 어설프나마 이것저것 공부한 덕에 이것저것 떠들어대다 보니(외부발표, 기고/저술 활동 등) 그럴듯해 보일 수는 있으나 진짜 전문가 앞에서는 터무니없는 수준임에도, 어느샌가 전문가라는 딱지가 하나둘씩 붙기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부담스러움이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여러 방향에서 들이치는 기술변화의 급물살들을 막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았다.

정체성

AI팀 팀장으로 발령되고 세 달이 흐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나의 장점이 특정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스스로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흥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 집요한 근본적 문제/해결과제 정의 (현업부서 관점)
  2.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술요소와 접근법 도출 (기술부서 관점)
  3.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닌, 새롭고 창의적인 해결방안 제시 (문제해결 효율성, 사업적 관점)
  4. 이를 성취해 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어쩌면 일찌기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기술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는 어설픈 욕심과, 이직 시장에서는 위와 같은 장점들은 객관적으로 어필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이 스스로를 가로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뭔가 ‘AI팀 팀장’이라고 하면 엄청난 기술 전문가여야만 할 것 같은, 스스로 짊어진 편견은 내려놓고 내가 가진 역량을 더 갈고 닦아야겠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게 팀장으로서 기대되는 역할이기도 할터다.

그럼에도

명함에 관리자 타이틀 올려두었다는 이유로, 비전문가들만 찾아다니며 입전문가가 되는 길은 절대 사양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무지를 드러내는 일은 내 스스로를 위해서도, 또한 더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세상에 위대한 흔적을 남기 위해서도 중요한 인생의 전략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하나님의 섭리 #2

이번 정상회담으로 적화통일이 된다는 둥, 전쟁이 난다는 둥 하나님이 경고하신다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는 과거 보수/진보 정권 할 것 없이 그 시기에 그들의 방식이 필요했고, 지금의 진행 방식 또한 지금의 세계 정세에 비추어 필요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모든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지금의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로 계속 햇빛정책만 고수했다면 지금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이명박 정권 이후로 계속해서 강경쟁책만 고수했다면 지금의 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번 정상회담이 그들에게 속는 것일 뿐 오히려 위협이 되어 돌아올 것이며, 이 결과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이라는 식의 발언에 대해서는,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일하신 결과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설명할텐가? 왜 그들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음성을 따라 사는 것이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방식이 그들의 생각처럼 한가지 방식만을 고집하시는 단순무식한 분이라 믿는 것인가?

하나님이 선악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으신 분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강변한다면, 당연하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시다. 악에 대해서는 일말의 타협도 없으신 공의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악을 허용하고 계시며 되려 선으로 바꾸셔서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스케일을 모른다면, 십자가 사건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전에 감히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방식에 ‘신학’이라는 단어를 들먹였다는 이유만으로 배도한 자 취급을 받고 나와의 모든 연결을 끊어버린 친구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주었던 말이 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과 그 방식에 대해 처음부터 제고해보기를 권한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잘 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며, 내가 들은 음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을 나눌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이 아니라, ‘나에게는 이런 마음을 주시는 것 같다’ 정도의 표현이 나 스스로를 교만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과격한 단어를 섞어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비난조의 주장을 펴는 ‘안맞으면 말고’ 식의 ‘예언’이, 나중에는 그들의 경고와 기도로 인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합리화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내가 틀렸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을 갖추고 있을까. 반대로 나도 만일 그들의 주장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나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하나님의 섭리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서, 조회수가 몇 되지도 않는 인터넷 구석에 있는 개인 블로그이지만, 한마디 남겨야겠다 싶다.

어떤 이들은 정상회담과 그 성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북한정권의 인권유린에 대한 묵인 또는 망각과 김정은 개인 또는 정권에 대한 미화 또는 나아가서는 북한정권 옹호로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서, 속이터져 견딜 수가 없다. 극히 일부일 것으로 추정되는 극좌파 인간들에 해당하는 수많은 가정들을 연결하는 과감하고도 무모한 비약적 추론을 대체 왜 모든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대입시키는 것일까?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민족의 염원과 평화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위해서라도 김정은의 악행에 대해 속으로는 구역질을 할 지언정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웃음을 지어야만 했을게다. 두 얼굴의 김정은을 대면하며 평양냉면 맛있다고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청와대로 돌아가서는 체해서 소화제를 먹어야 했을게다. 아니 준비하던 기간들을 포함해서 위장병이라도 났을 것 같다.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일이며 북한의 인권유린을 부추기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김정은과 북한정권이 그러한 정권이니 날이면 날마다 각을 세우는 일이 고통받고 있는 동포들에게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오히려 김정은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어 지금보다는 나은 상태로 나아갈 방안을 찾고 합의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북에 쳐들어가 모조리 때려부수기라도 할텐가?

게다가 소위 말하는 우파 기독교인들(좌우 구분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정상회담을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을 좌파로 통칭하는 것을 볼 때)은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들 기독교인들을 영적으로 무지하여 자신도 모르게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경우 또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일들을 자행하는 무리로까지 해석해버리는 일반화 오류의 극단을 보여준다.

나 자신조차도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 그 생각이 어떤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어 왔는지 분간조차 어렵고 부패한 본성으로 인해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오동작하기 십상인 연약한 존재일진데, 그들은 나의 의도와 생각을 명확하게 잘 판단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정확도의 딥러닝 분류기라도 탑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사건들 이면에 수많은 이해관계와 사건들이 조합되어 있다는 단순한 상식과, 그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운 사회 시스템 속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방식의 정치적 행태만이 선한 결과를 내는 하나님의 방식임을 주장하는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북한정권의 수많은 악행과 추태들에 대해 눈물흘리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은혜가 북한 땅에 풀어지도록 기도하는 일은 너무나 필요한 일이고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왜 그 기도와 열정이 북한 땅(북한 정권이 아닌)을 축복하는 일에 사용되지 않고 엄한 국내 기독교인들에 대한 판단과 비난으로 목에 핏대를 올리고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안타깝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그들의 사고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이러이러하게 흘러가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소위 보수 정권 때는 로마서 13장 1절을 들먹이며 권위에 순종하라고 주장하면서 ‘소위’ 진보 정권 때는 대통령 비난에 앞장서 있는 아이러니는 무엇인지. 주체사상이라는 비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반감, 그리고 ‘거룩한 사명감’에 불타 있는 탓에 북한과 그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 역학 관계의 복잡성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도 그 잣대로 해석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갈등들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선을 이루시도록 기도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도플갱어로부터 얻어낸, 승리의 커피

내 스타벅스 닉네임은 ‘써노’다.

“써노 고객님~ 아이스커피 나왔습니다~”

그런데.. 읭? 왠 청순해 보이는 한 여인이 픽업대를 향해 종종걸음을 친다.
뭔가 얘기하러 가나? 아니면 옆에 다른 커피 가지러 가나? (안보이는데..)
했지만.. 내 커피로 추정되는 테이크아웃 잔을 덥썩 집어든다.

‘어라? 똑같은 커피를 시켰나?’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을 의심부터 하다니 나도 점점 꼰대가 되어가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써노 고객님.. 맞으세요?”

직원이 당황했는지 그 여인에게 되묻는다.
오! 직원이 써노가 아님을 알아본다.

‘그러면 그렇지, 감히 스타벅스 선호점에서 써노가 주문한 커피에 손을 대다니..’

괜한 실갱이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 안심했다.

‘커피에 닉네임이 붙어있을텐데, 확인하고 나면 내려놓겠지. 아니면 실수로 내가 주문한 커피를 집어들었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해빠진 평범한 논리를 펼치느라 바쁜 머리를 때렸다.

“네!”

엥? 뭐라고? 진짜 써노는 뒤에 있는데? 내가 지금 유체이탈 중인가? 이 상황은 뭐지?

“써노.. 고객님.. 아니신 것 같은데..”

충직한 스타벅스 선호점의, 신참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오히려 당황한 나를 깨웠다. 아뿔싸,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게다가 이 여인은 연신 자신이 써노가 맞다고 연신 고개까지 끄덕이며 한 손으로 집어도 충분한 커피잔을 두 손으로 움키쥐고 있다.

커피가 너무나 간절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이 일단 써노라고 해야할 것만 같은 당혹스러움에 사로잡힌 탓일까? 차라니 나에게 한 잔 사달라고 하면 기꺼이.. (응? 이건 아니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만!)

분명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남자인 나의 도플갱어일리는 없다는 추론 정도는 할 정신은 돌아왔나 보다. 이 여인을 더 당혹스러움에 파묻히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사명감, 분명 써노가 아닌 것 같은데 맞다고 우기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신참으로 보이는 직원을 배려해야 한다는 오지랖, 이제 날씨가 풀린 탓인지 빨리 아이스커피를 목으로 넘기고 싶은 본능 등이 한데 뒤얽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 커핀데요 -_-“

다행히 반전은 없었다. 여인은 픽업대로 향하던 그 종종걸음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얼결에 얻은 승리의 커피잔에 빨대를 꽂고야 말았다.

블록체인과 이커머스

터키에는 이스탄불 여행객들에게 추천되는 장소 중 하나인, 그 유명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가 있지요. ‘바자르’는 이슬람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군요. 저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 전통상가와 지하상가의 분위기와 흡사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 상인들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호객합니다. 마치 명동 상인들 같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jikatu/3924492530

각설하고, 이번 글에서는 그랜드 바자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오픈 바자르‘라는 개인간 거래 플랫폼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나라와 유사하면서 지마켓이나 옥션 같은 오픈마켓 성격을 결합한 모양새의 플랫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특징을 몇가지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오픈 바자르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여 거래
  2. 결제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를 사용
  3. 개인이 상품을 리스팅하고 판매할 수 있으며, 리스팅이나 판매에 따른 수수료가 없음
  4. 안전한 거래를 위해 중개자(moderator)를 통한 거래 선택 가능 (에스크로와 유사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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