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s: Seonho Kim

About Seonho Kim

– Knowledge Engineer at eBay Korea
– Medical Informatics PhD Candidate, Kyunghee Univ, Korea
– Interest keywords: semantic web, ontology, linked open data, artificial intelligence
– Citations: http://scholar.google.co.kr/citations?user=5WWavXoAAAAJ&hl=en
– Hobby: playing instruments (drums, guitar)

블록체인과 이커머스

터키에는 이스탄불 여행객들에게 추천되는 장소 중 하나인, 그 유명한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가 있지요. ‘바자르’는 이슬람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군요. 저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 전통상가와 지하상가의 분위기와 흡사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 상인들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호객합니다. 마치 명동 상인들 같은?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jikatu/3924492530

각설하고, 이번 글에서는 그랜드 바자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오픈 바자르‘라는 개인간 거래 플랫폼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고나라와 유사하면서 지마켓이나 옥션 같은 오픈마켓 성격을 결합한 모양새의 플랫폼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특징을 몇가지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오픈 바자르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여 거래
  2. 결제는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를 사용
  3. 개인이 상품을 리스팅하고 판매할 수 있으며, 리스팅이나 판매에 따른 수수료가 없음
  4. 안전한 거래를 위해 중개자(moderator)를 통한 거래 선택 가능 (에스크로와 유사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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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와 블록체인

내 몸의 정보는 내 것이 아니다

작년 말, 그러니까 2017년 11월에는 메디블록(Medibloc)이라고 하는 블록체인 기반 의료정보 공유 플랫폼이 ICO(Initial Coin Offering)를 했습니다. ICO 한 달 전인 2017년 10월에는 White Paper 1.0 버전을 공개했습니다.

이 플랫폼의 개념은 간단하게 생각하면 ‘블록체인이 보안에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여기에 의료정보를 관리하면 되겠네’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저장소를 의료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블록체인으로 옮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는 의료정보 생성 및 활용, 관리의 주체가 개별 의료기관이었다면, 그 소유권과 활용의 주도권을 환자에게 넘기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병원으로 대표되는 의료기관에서의 경험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내 돈 주고 내 몸에 대한 의료 데이터를 생성하고는(물론 그 비용은 치료비용이긴 하지만), 그 데이터를 내가 조회 받으려면 또 돈을 내야 합니다. 게다가 다른 의료기관에서는 그 데이터를 알 수 없으니 또다시 검사 등의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주도권이 환자에게 넘어온다면 어떨까요? A 병원에서 발생한 내 의료 데이터를 내가 관리하고 그 데이터를 B 병원에서 조회할 수 있도록 허가함으로써 중복 의료비용을 절감하고 의사 입장에서도 더 정확한 의료 행위를 할수 있게 됩니다. 병원 뿐 아니라 의료보험 신청 시에도 마찬가지이고, 심지어 의료정보 연구진에게는 일정 비용을 받고 내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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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같은 기도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창세기 12:3

누구나 복을 좋아해서인지 교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봤을 때 이 말씀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발견을 못한 것인지도), 불행하게도 나는 과거에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은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나를 저주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저주하시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씀이, 은연 중에 과연 사랑의 하나님에게 걸맞는 약속인지에 대한 의문을 낳게 했던 것 같다. 그것이 나만의 의문이 아니었던지, 이 구절을 사용한 어떤 축복송에서는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는 쏙 빼놓기도 했다 (오래된 찬양이어서인지 악보도 음악도 찾기가 힘들다).

하나님은 왜 굳이 저주에 대한 말씀을 포함시키셨을까. 이 구절을 특별히 묵상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의 고통이 있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이 말씀이야말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구절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대신해 분노하시고 싸워주시는 하나님. 그렇지 않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듯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더 크게 분노하신다는 사실이 내게 위로가 되고, 나의 고통에 비례해서 그 마음에 더 감동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내가 오랫동안 제임스파울러의신앙발달단계에서소위우주적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기적이고 편협한 신앙으로 치부해왔던 다윗의 기도(나 자신은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면서도)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나 자신의 고통과 비참함을 더 잘 인지하고 직면할수록 나를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더 갈망하게 한다. 이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인간의 비참함으로부터 시작하는 것과도 맥이 닿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실상 이 구절의 비밀은 뒷부분에 있다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이 표현은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마음이 내 원수를 ‘저주’하려고 눈을 부릅뜨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족속을 축복하기 원하신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족속들이 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을 발견하고 나를 축복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내가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함을 명령하시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이 구절은 사랑과 저주라는 모순의 실타래 속에서도 나와 인류를 향한 분명한 사랑을 드러내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강력한 영광과 통치를 강조하며, 내게 주어진 사명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매우 강렬한 말씀이다.

작년말에서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고 다윗과 같은 기도의 근거이기도 하다. 하나님 앞에서마저 고상한척 하고 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나는 내 삶과 감정을 얼마나 하나님께 아뢰었는가. 그렇지 못했던 나의 태도야말로 불신을 반증하는 태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도한다. ‘하나님, 저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고 저를 힘들게 하고 저주하는 자들을 벌해 주시되, 그것으로 인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