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회복

열매 맺는 나무와 선악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먹기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들을 그 곳에서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창 2:9, 쉬운 성경
 묵상하는 동안 '열매'로부터는 '성령의 열매'를, '나무'로부터는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떠올랐다. 그러나, 에덴동산에는 다를 나무들 뿐 아니라,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같이 있었다. 이것이 지금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성령의 열매 중에도 선악과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맺게 하신 열매가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나의 의로 취하기 시작할 때 그것이 선악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상상해본다면, 어쩌면 에덴 동산의 선악과 열매도 그냥 보통의 열매와 같은 것이지만 (선악과 種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선정해서 선악과로 삼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즉, 지금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많은 것들 중에 하나님을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도록 한 가지를 선정해서 선악과와 같이 삼으실 수 있다고 뜻이다.

 

생명나무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시고 생명나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은혜로 주어진 은사(gift)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 '열매'자체에 나의 관심을 집중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생명나무에서 멀어질 수 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비전 성경사전에 따르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상징한다. 생명나무는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 하셨다. 모든 열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음에도, 내가 선악과를 취한다면 (나의 의로 여긴다면) 예수님을 아는 삶을 잃어 버리게 될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와 같이, 그를 깊이 알아갈 기회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Continue reading “교회의 회복”

동양철학과 하나님의 관점

올바른 비판은..

동양 철학의 주장들은 다원주의나 범신론 등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이 많고,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해 공격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또, 동양에 서양의 문물들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서양에도 동양의 문화와 사상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점은 더욱 강력한 무기로 역수입될 가능성이 다분하고 일부 그러한 현상들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내가 볼 때(후에 얘기하겠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상에 대해 진정으로 우려를 표명하려면, 동양 철학의 수용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분별하여 비판해야 한다. 또 보다 적극적으로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어떠한지 더 잘 이해하여 전도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기독교 내에서도 동양 철학의 일부만을 보고 무조건 배타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한다면, 동양철학 내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행하심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양철학이나 한의학, 음양오행을 전공하지 않은 자임에도, 또 신학자가 아님에도 그 전부터 이러한 주제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파악하고 싶은 것이 나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러나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에 대한 판단을 계속 미뤄왔으나, 시도하는 자가 없어 답답했고 정확한 결론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글을 시도함으로써 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될 것 같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숙하나마 한의학 동양철학에 대한 책을 읽고 이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이는 분명 쉽지 않은 시도이고, 자칫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은 잃는 것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Continue reading “동양철학과 하나님의 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