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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과 하나님의 섭리 #2

이번 정상회담으로 적화통일이 된다는 둥, 전쟁이 난다는 둥 하나님이 경고하신다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는 과거 보수/진보 정권 할 것 없이 그 시기에 그들의 방식이 필요했고, 지금의 진행 방식 또한 지금의 세계 정세에 비추어 필요한 방식이라 생각한다. 모든 상황들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지금의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대중 정권 이후로 계속 햇빛정책만 고수했다면 지금의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이명박 정권 이후로 계속해서 강경쟁책만 고수했다면 지금의 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번 정상회담이 그들에게 속는 것일 뿐 오히려 위협이 되어 돌아올 것이며, 이 결과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이라는 식의 발언에 대해서는,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일하신 결과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설명할텐가? 왜 그들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 음성을 따라 사는 것이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방식이 그들의 생각처럼 한가지 방식만을 고집하시는 단순무식한 분이라 믿는 것인가?

하나님이 선악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으신 분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강변한다면, 당연하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이시다. 악에 대해서는 일말의 타협도 없으신 공의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악을 허용하고 계시며 되려 선으로 바꾸셔서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스케일을 모른다면, 십자가 사건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전에 감히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방식에 ‘신학’이라는 단어를 들먹였다는 이유만으로 배도한 자 취급을 받고 나와의 모든 연결을 끊어버린 친구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주었던 말이 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삶과 그 방식에 대해 처음부터 제고해보기를 권한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잘 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적어도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며, 내가 들은 음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나 예언을 나눌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이 아니라, ‘나에게는 이런 마음을 주시는 것 같다’ 정도의 표현이 나 스스로를 교만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과격한 단어를 섞어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비난조의 주장을 펴는 ‘안맞으면 말고’ 식의 ‘예언’이, 나중에는 그들의 경고와 기도로 인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합리화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내가 틀렸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을 갖추고 있을까. 반대로 나도 만일 그들의 주장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면 나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하나님의 섭리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서, 조회수가 몇 되지도 않는 인터넷 구석에 있는 개인 블로그이지만, 한마디 남겨야겠다 싶다.

어떤 이들은 정상회담과 그 성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북한정권의 인권유린에 대한 묵인 또는 망각과 김정은 개인 또는 정권에 대한 미화 또는 나아가서는 북한정권 옹호로 연결시키는 것을 보면서, 속이터져 견딜 수가 없다. 극히 일부일 것으로 추정되는 극좌파 인간들에 해당하는 수많은 가정들을 연결하는 과감하고도 무모한 비약적 추론을 대체 왜 모든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대입시키는 것일까?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민족의 염원과 평화와 북한의 인권 문제를 위해서라도 김정은의 악행에 대해 속으로는 구역질을 할 지언정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웃음을 지어야만 했을게다. 두 얼굴의 김정은을 대면하며 평양냉면 맛있다고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청와대로 돌아가서는 체해서 소화제를 먹어야 했을게다. 아니 준비하던 기간들을 포함해서 위장병이라도 났을 것 같다.

이번 정상회담이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일이며 북한의 인권유린을 부추기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김정은과 북한정권이 그러한 정권이니 날이면 날마다 각을 세우는 일이 고통받고 있는 동포들에게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오히려 김정은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어 지금보다는 나은 상태로 나아갈 방안을 찾고 합의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북에 쳐들어가 모조리 때려부수기라도 할텐가?

게다가 소위 말하는 우파 기독교인들(좌우 구분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정상회담을 찬성하는 기독교인들을 좌파로 통칭하는 것을 볼 때)은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들 기독교인들을 영적으로 무지하여 자신도 모르게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경우 또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일들을 자행하는 무리로까지 해석해버리는 일반화 오류의 극단을 보여준다.

나 자신조차도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 그 생각이 어떤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어 왔는지 분간조차 어렵고 부패한 본성으로 인해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오동작하기 십상인 연약한 존재일진데, 그들은 나의 의도와 생각을 명확하게 잘 판단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정확도의 딥러닝 분류기라도 탑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사건들 이면에 수많은 이해관계와 사건들이 조합되어 있다는 단순한 상식과, 그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지 한 치 앞도 예상하기 어려운 사회 시스템 속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방식의 정치적 행태만이 선한 결과를 내는 하나님의 방식임을 주장하는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북한정권의 수많은 악행과 추태들에 대해 눈물흘리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은혜가 북한 땅에 풀어지도록 기도하는 일은 너무나 필요한 일이고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왜 그 기도와 열정이 북한 땅(북한 정권이 아닌)을 축복하는 일에 사용되지 않고 엄한 국내 기독교인들에 대한 판단과 비난으로 목에 핏대를 올리고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안타깝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그들의 사고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이러이러하게 흘러가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소위 보수 정권 때는 로마서 13장 1절을 들먹이며 권위에 순종하라고 주장하면서 ‘소위’ 진보 정권 때는 대통령 비난에 앞장서 있는 아이러니는 무엇인지. 주체사상이라는 비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반감, 그리고 ‘거룩한 사명감’에 불타 있는 탓에 북한과 그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 역학 관계의 복잡성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도 그 잣대로 해석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갈등들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선을 이루시도록 기도해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