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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1일 솔트룩스 퇴사를 기해 나름의 소회를 남겼었는데, Phase 3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베이코리아 Data Analytics팀 입사, 2017.05.08. 


대기업에 입사하게 됐으니 잘 된 것이지 무슨 ‘Phase 3’니, ‘도전’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늘어놓는가 할테지만, 이제 그 이유와 개인적 의의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한다. 그간 어디에서 어떤 경험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여러가지 고민들이 있었는데, 먼저 솔트룩스에서 퇴사하면 잃게 되는 기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다. 

  1. 선도적인 연구 개발 주제 경험: 기술 투자 여력이 충분한 기업이 아니고서는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쉽지 않지만 솔트룩스는 이런 면에서 상당한 추진 의지를 갖고 있고, 이것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에 다양한 기관/전문가들과 협업하면서 인공지능 관련 기술에 대해 어떤 니즈들이 있는지 또 어느 정도의 인식 또는 기술 수준에 있는지 등의 트렌드를 살펴보기에는 솔트룩스만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2. 국제적 협업 기회: 담당 업무 중 많은 부분이 베트남 개발 지사와의 협업,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연구기관, 기업들과의 연구 과제 수행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일하는 방식과 전문성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 지속적으로 영어로 소통하는 환경에 노출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가 소득이었다. 
  3. 시맨틱 기술 전문가로서의 성장: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각광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딥러닝만을 외치고 있지만, 딥러닝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영역도 있겠으나 실제 도메인에서 작동되는 시스템 개발에 있어서는 시맨틱 기술의 결합이 필요한 경우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두 기술을 어떻게 결합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해 나갈 수 있고 그 전문성/인력을 갖춘 기업은, 국내에서는 솔트룩스 외에 전무하다시피하다.
  4. 기업성장 가능성: 최근 인공지능 붐으로 인해 솔트룩스가 여러 기관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긍정적 평가를 받아 기업가치가 상승하고 있으며 IPO도 꾸준히 준비해 왔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헤드헌터 제안들에 대해서도 왠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거절해 왔었던 것 같다. 심지어 인터뷰에 응해서도 꼭 가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고 있는 중이라 말할 정도로, 다음 단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왔다. 

나름 이곳저곳 인터뷰도 다녀보고 정보도 취합해 보고 하면서, 거의 최종 단계까지 진행된 곳도 있고 아예 서류전형이나 첫 번 면접에서부터 탈락한 경우들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이베이에 안착하기로 했다. 면접 중에 만일 최종단계까지 잘 진행이 되었을 때 이직 제안에 승락할 의사가 몇 퍼센트 정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때도 그저 이직을 원해 지원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나 보다)에 대략 70% 정도라고 대답했었다. 많은 경우에 인공지능 기술이나 데이터 분석 등의 포지션에서는 시맨틱 기술 전문가가 낙찰될 가능성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일 입사하게 되더라도 관련한 협업 환경이 없다면 혼자서 고군분투하거나 내 전문성을 활용한 시너지는 접어두고 데이터 엔지니어링과 분석 업무에 전념하게 될 것 같아 고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위에서 고려했던 1, 3번 기회를 버리게 되는 길이기도 했고, 관련 전문성을 다시 축적하고 활용하는 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단기간에는 나 자신과 기업의 윈윈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글에 밝혔던 것처럼 B2B 업무를 위한 기술 개발보다는 B2C 서비스와 데이터에 대한 ‘기술 적용’ 경험에 목말라 있었던 터였고, 인터뷰 과정에서 면접관 분들로부터 ‘이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보다도 ‘지원자의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직 제안에 비교적 쉽게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이제 이직 절차를 마무리하고 입사하게 된 시점에서 나의 도전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1. 회사의 브랜드에 기대지 않은 채 스스로를 시맨틱 전문가로서 증명해 내고, 기존에 수행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방식으로 실제적인 성과를 이루어 내는 것
  2. 기 보유 솔루션을 활용한, 다양하지만 얕은 경험 탓에 깊지 않은 기술 숙련도를 단기간에 빠르게 끌어 올리고 활용하는 것

이 둘을 생각해보건데, 앞서 나열한 솔트룩스에서의 기회들은 나의 전문성이 아닌 회사의 역량에 기댄 소극적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솔트룩스에서는 전체적으로 기술 트렌드를 조사/연구하고 내재화하는 것 자체가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의미있는 Phase 3가 되기 위해서는 솔트룩스에서 해오던 역할들은 물론이고 서비스에 대한 기술 적용 제안과 실행까지 해내야 하는 매우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한 업무가 될 것 같다. 

몇 년 후에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 

2017-04-21, Phase #3

내 인생의 Phase 1을 학창시절(대학원 시절까지)이라고 한다면, Phase 2는 솔트룩에서의 근무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햇수에 비해 여러가지 고뇌와 삶의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이제 Phase 3의 문 앞에 서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솔트룩스에서 퇴사한 것. 아직까지 처리하고 나와야 할 업무가 남아 있어 아직까지는 홀가분한 맘이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사회적 신분상으론 자연인인 상태다.

2011년 3월, 박사 과정 중 좀처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론의 세계에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해보겠노라고  주변의 만류도 뿌리친 채 박사 학위를 마치지도 않고 무작정 회사를 지원해 솔트룩스에 입사했던 그 때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은 이사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회의실에서의 면접, 그리고 개발능력 테스트 때 잠시 머물러 있던 사무실의 묘한 느낌이 아직도 생각나고, 입사하자마자 유럽협력 연구과제에 투입되어 헤매고 밤새던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에만 갖혀 있던 그 때는 몰랐던, 성실함만으로는 되지 않는 냉정한 세계를 조금씩 경험하면서 스스로의 전문성에 대한 갈등, 우주에 의미있는 작은 흔적이라도 내보고 싶은 욕심이 뒤섞이게 되었던 것 같다. 박사과정도 다시 마무리해보겠다고 제자의 외도에도 늘 격려해주시던 교수님께 다시 지도를 부탁드리기도 하고, 나만의 사업을 생각하며 부끄럽기 그지없는 어줍잖은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4월 21일, 여러 고민 끝에 다음 단계에 발을 들이밀고 도전해보려는 결정을 실행에 옮기고야 말았다.

스스로의 전문성에 대해 늘 부족함과 모종의 자괴감(?)을 느껴왔는데, 근무 기간이 축적됨에 따라 점차 관리 업무를 맡게 되고, 그런 업무의 특성상 최근 인공지능의 붐을 타고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회사의 브랜드를 등에 업은 채 고객을 만나면서 그러한 부담이 가중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매출의 대부분이 B2B라는 사업 특성상 결국 다른 기관을 위한 서비스와 시스템 구축을 수행하고 또 다른 기관의 사업 수주를 위해 그 브랜드를 더 공고히 해야 하는 일의 반복 속에서, 아직은 축적해 둔 내공이 미천한 탓인지 스스로의 기술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것 같다.

이제 30대 중반 밖에 되지 않은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떼어낸 젊은이가 어설픈 전문가 놀이에 뛰어들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다듬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Phase 2가 격변의 시기였다면, Phase 3는 모험과 도전의 시기가 될 것 같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Phase 4를 위해 견고한 기초를 놓아야 할 때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나는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에 구체적인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살아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기 합리화에 빠져버리지 않고, 내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추구하기 위한 시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