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또는 직업의 선택에 대해

감사하게도

최근 여러경로를 통해 이직을 제안받고 있다. 물론 그 중 상당수는 헤드헌터들로부터 받는 무의미한 찔러보기들이지만, 가끔씩은 며칠을 고심하게 만드는 솔깃한 제안들도 있다.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현직장에서 해보고 싶은 일들을 아직 충분히 성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탓에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는 않으나, 기회라는 녀석이 늘 내 상황 봐가며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보니 (인생은 타이밍..) 최소한 검토까지는 시도해보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번의 제안들을 검토해보면서 자신만의 기준을 충분히 세워두지 않으면 고민만 길어질 뿐 좋은 선택(stay or move)을 하기 어렵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 생각을 정리해두고자 한다 (‘써노로그’니까. 내 자신을 위해 남겨두는 기록으로서).

‘좋은 선택’이란

최근의 경험을 돌이켜보자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러이러한 것이 좋아질 것 같다. 그러니 시도해 볼만 해’라는 생각에 갖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사고의 흐름에서 처음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했다. 내가 기회들을 검토하고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나도 모르게 기회란 녀석이 나를 검토하도록 방치하고 있었던 것.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실현하려는 노력보다는, 누군가(이직 제안자)의 니즈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매우 수동적인 자세에 머물러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고 싶지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충분한 적극성이 결여되어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직장인’의 범주에 머물게 만들고, ‘(직장인) 커리어 패스’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의 열정을 실현하고 행복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인과 계약을 맺고 있을 뿐임을 상기해보면, 자신을 1인 기업가로 인식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출발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좋은 선택’의 기준은 직책(권한의 확장, 회사를 등 뒤에 엎었을 뿐인 허구적 개인 브랜드), 연봉 따위가 아니라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 ‘나는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그 흔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평생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문제이니만큼,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해보기로 했다.

  • 가슴이 뛰는 일인가: ″설탕물이나 팔며 인생을 마칠 것인가” – 스티브 잡스
  • 글로벌한 기회가 있는가: 흔적을 남기는 일을 우리나라로 제한해야 할 이유가 없다

1인 기업가로 살아가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기준은 이직/창업/직종전환 등 어떤 경우든 무관하게, 결국 그 회사의 주식을 사고 싶은지 (가치 투자 관점) 또는 지분을 인수하고 싶은지의 기준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1인 기업가로서 그 법인과 동업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당연한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위에 언급했던 스티브잡스의 설탕물 일화는 매우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영상이 남아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첨부한 영상은 기술을 개발해놓고 시장에 팔 궁리를 하기 보다는 고객경험에서 출발하여 기술개발에 도달해야 한다는 잡스옹의 발언이다. 이를 지금의 고민에 접목해보자면 내가 가진 기술이나 지식을 앞세우기보다는 1인 기업가로서 내 고객들에게(또는 세상에) 어떤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즉, 이 원칙은 다음 회사나 직업을 선택할 때의 방향성과도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기준을 이렇게 정리하면서 그간 복잡했던 생각이 상당부분 해소되었는데,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는 기회를 놓칠 것 같은 조급함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좋은 기회가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장했을 때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면, 기회에 대한 조급함 보다는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열정을 가져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먼저 집중해야 맞다.

또 다시 상황에 매몰되어 조급함을 갖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이 글을 다시 곱씹어봐야겠다. 그리고 나중엔 더 숙성되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로그를 남기게 될 날이 오기를.

출정 신고

2017년 4월 21일 솔트룩스 퇴사를 기해 나름의 소회를 남겼었는데, Phase 3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베이코리아 Data Analytics팀 입사, 2017.05.08. 


대기업에 입사하게 됐으니 잘 된 것이지 무슨 ‘Phase 3’니, ‘도전’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늘어놓는가 할테지만, 이제 그 이유와 개인적 의의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한다. 그간 어디에서 어떤 경험을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여러가지 고민들이 있었는데, 먼저 솔트룩스에서 퇴사하면 잃게 되는 기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다. 

  1. 선도적인 연구 개발 주제 경험: 기술 투자 여력이 충분한 기업이 아니고서는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쉽지 않지만 솔트룩스는 이런 면에서 상당한 추진 의지를 갖고 있고, 이것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에 다양한 기관/전문가들과 협업하면서 인공지능 관련 기술에 대해 어떤 니즈들이 있는지 또 어느 정도의 인식 또는 기술 수준에 있는지 등의 트렌드를 살펴보기에는 솔트룩스만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2. 국제적 협업 기회: 담당 업무 중 많은 부분이 베트남 개발 지사와의 협업, 그리고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연구기관, 기업들과의 연구 과제 수행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일하는 방식과 전문성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 지속적으로 영어로 소통하는 환경에 노출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가 소득이었다. 
  3. 시맨틱 기술 전문가로서의 성장: 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각광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딥러닝만을 외치고 있지만, 딥러닝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영역도 있겠으나 실제 도메인에서 작동되는 시스템 개발에 있어서는 시맨틱 기술의 결합이 필요한 경우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두 기술을 어떻게 결합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해 나갈 수 있고 그 전문성/인력을 갖춘 기업은, 국내에서는 솔트룩스 외에 전무하다시피하다.
  4. 기업성장 가능성: 최근 인공지능 붐으로 인해 솔트룩스가 여러 기관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긍정적 평가를 받아 기업가치가 상승하고 있으며 IPO도 꾸준히 준비해 왔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헤드헌터 제안들에 대해서도 왠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거절해 왔었던 것 같다. 심지어 인터뷰에 응해서도 꼭 가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고 있는 중이라 말할 정도로, 다음 단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왔다. 

나름 이곳저곳 인터뷰도 다녀보고 정보도 취합해 보고 하면서, 거의 최종 단계까지 진행된 곳도 있고 아예 서류전형이나 첫 번 면접에서부터 탈락한 경우들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이베이에 안착하기로 했다. 면접 중에 만일 최종단계까지 잘 진행이 되었을 때 이직 제안에 승락할 의사가 몇 퍼센트 정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때도 그저 이직을 원해 지원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나 보다)에 대략 70% 정도라고 대답했었다. 많은 경우에 인공지능 기술이나 데이터 분석 등의 포지션에서는 시맨틱 기술 전문가가 낙찰될 가능성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일 입사하게 되더라도 관련한 협업 환경이 없다면 혼자서 고군분투하거나 내 전문성을 활용한 시너지는 접어두고 데이터 엔지니어링과 분석 업무에 전념하게 될 것 같아 고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위에서 고려했던 1, 3번 기회를 버리게 되는 길이기도 했고, 관련 전문성을 다시 축적하고 활용하는 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단기간에는 나 자신과 기업의 윈윈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글에 밝혔던 것처럼 B2B 업무를 위한 기술 개발보다는 B2C 서비스와 데이터에 대한 ‘기술 적용’ 경험에 목말라 있었던 터였고, 인터뷰 과정에서 면접관 분들로부터 ‘이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보다도 ‘지원자의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직 제안에 비교적 쉽게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이제 이직 절차를 마무리하고 입사하게 된 시점에서 나의 도전은, 다소 추상적이지만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1. 회사의 브랜드에 기대지 않은 채 스스로를 시맨틱 전문가로서 증명해 내고, 기존에 수행하지 않았던 창의적인 방식으로 실제적인 성과를 이루어 내는 것
  2. 기 보유 솔루션을 활용한, 다양하지만 얕은 경험 탓에 깊지 않은 기술 숙련도를 단기간에 빠르게 끌어 올리고 활용하는 것

이 둘을 생각해보건데, 앞서 나열한 솔트룩스에서의 기회들은 나의 전문성이 아닌 회사의 역량에 기댄 소극적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솔트룩스에서는 전체적으로 기술 트렌드를 조사/연구하고 내재화하는 것 자체가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의미있는 Phase 3가 되기 위해서는 솔트룩스에서 해오던 역할들은 물론이고 서비스에 대한 기술 적용 제안과 실행까지 해내야 하는 매우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한 업무가 될 것 같다. 

몇 년 후에 이 글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까.